당나리와 백합
백합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언제나 이맘때면 어김없이 백합은 피어나고 향기로운 바람이 일렁인다.
당나리
어렸을 적에 유일하게 알고 있던 백합은 당나리 뿐이었다.
그 때는 백합이라고는 오직 당나리 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추억 속의 당나리를 우연히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작년에는 꽃대 하나에 꽃이 3송이 달린게 최고였는데
올해는 기대 이상으로 다섯 송이가 나팔을 불고 있다.
우리집 토양에 잘 맞는지 꽃대도 많이 올라오고 자구도 많이 달고 있다.
키도 작년보다 많이 커졌다.
이 꽃을 나눠주신 할머니는 꽃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으로
집앞 길가에도 여러가지 꽃들을 아름답게 가꾸셔서 오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셨다.
몇 달 전, 우리집의 꽃을 갖다드리려고 할머니댁에 찾아갔더니
할머니는 안보이고 며느리라는 분이 나와서 하는 말
"지난 겨울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허망한 마음에 할머니의 명복을 빌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해마다 당나리가 피면 그 할머니가 생각날 것이다.
뒷쪽의 당나리와 앞쪽의 백합은 색깔은 비슷하지만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
앞쪽 백합은 귀여운 맛은 있으나 당나리의 귀품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꽃 가꾸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당나리를 찾아 헤매는지 알 것 같다.
노랑 백합은 번식을 너무 잘해서 동생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알부는 텃밭으로 옮겨심었다.
이렇게 눈치없는 꽃 때문에 텃밭은 자꾸 꽃밭이 되어가고 있다.
시련을 딛고 가장 먼저 백합의 계절을 열어준 주황색 난쟁이 백합
구근이 있는 줄 모르고 돌을 박아놨는데
어쩌다 보니 작은 돌틈으로 촉이 삐져나오는 것이었다.
돌을 들추니 돌 밑에서 ㄴ자로 구부러진채 간신히 탈출구를 찾아 나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돌을 치워주었더니 굳세게 자라서 밝게 웃는다.
난쟁이 백합은 20여 년 전에 내가 최초로 구입한 백합으로
그 때만 해도 요즘같이 다양한 백합이 나오지 않았었다.
요즘은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수입종 백합들이 넘쳐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