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 -(구름 속의 마테호른)
9월 10일
마테호른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프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모든 풍경 중에 단연 최고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3시간 30분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는데도
선뜻 내려가기가 싫어서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흐리고 비가 오던 날씨가 일순간에 좋아지면서 벅찬 감동의 순간을 안겨준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쌓지도 않은 덕을 미리 당겨서 썼으니 앞으로 더 많은 덕을 쌓으라는 하늘의 뜻일려나?
케이블카를 타고 트로케너슈테그로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마테호른 전망대에서는 더없이 맑았던 날씨가 아랫쪽으로 1,000m쯤 내려오니 완전 구름 속이다.
트로케너슈테그에 당도하니 다시 날씨가 좋아졌다.
곧바로 환승하지 않고 40여 분간 머물면서 멋진 설산을 감상했다.
일행과 떨어져 우리 부부만 있으니 완전 자유여행을 떠나온 것 같았다.
이곳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퓨리로 내려갔다.
아, 마테호른!
퓨리에서 마주한 마테호른이다.
바로 이 모습이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마테호른의 진정한 자태이다.
마테호른 전망대에서 보았던 평범한 모습과는 달리 기골이 장대하고 각이 살아있다.
구름이 휘감고 있어서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둘이서 벤취에 앉아 구름이 완전히 걷힐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구름은 더 많이 몰려오기도 해서 마테호른을 거의 감싸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끈기있게 기다렸다.
잠깐 동안 주어진 자유여행에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참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한 무리의 구름이 지나가나 싶으면 다시 새로운 구름이 몰려오고~
시간대 별로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구름의 변화를 감상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었다.
마테호른 중간에 스카프처럼 둘러있던 구름이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이제 곧 전체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드디어 전체적인 윤곽이 어렴풋이나마 드러났다.
정말 간절하게 보고 싶었던, 알프스 3대 미봉 중에서도 가장 기대했던 산이 바로 마테호른이었다.
마테호른은 세계 최고의 미봉답게 그야말로 장엄하고 아름답게 우뚝 솟아있다.
조금 남아 있는 구름이 완전히 걷히길 기다렸으나
위쪽으로 올라가던 구름은 약올리기라도 하는 듯이
다시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마테호른의 윤곽을 흐트려 놓았다.
구름은 점점 더 많이 몰려오고 더 이상은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아
내일을 기약하면서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뜻밖에도 트레킹을 하며 내려오는 우리 일행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케이블카를 타고 2번 환승하며 내려온 구간을 이들은 걸어서 내려왔던 것이다.
일행 중 체력이 딸린 세 분은 우리 부부와 합류하여 같이 곤돌라를 타고 체르마트까지 내려갔고
나머지 일곱 분은 또다시 걸어서 내려갔다.
알프스 깊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체르마트가 한 눈에 보인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마을이다.
체르마트에 도착해서 마테호른을 바라보니 여전히 구름과 숨바꼭질 중이다.
퓨리에서 더 오래 기다렸어도 전체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일찍 내려와 시간여유가 있어서 시내 구경에 나섰다.
꽃이 잘 가꾸어진 공동묘지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체르마트의 공동묘지는 외진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터전과 같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혐오시설이라고 기피했을텐데......
죽은 자의 영역에서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