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손자들의 독감

달빛3242 2018. 1. 17. 22:38

아들에게서 반갑지 않은 전화를 받았다.

작은손자가 독감에 걸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큰손자는 괜찮은데 작은손자에게서 독감이 전염될까봐 걱정이라며

 당분간 큰손자를 맡아주었으면 하는데 우리의 사정이 어떠한지 물었다.

큰손자가가 온다는데 우리야 백번 환영하지만 작은손자가 독감에 걸렸다니 걱정이 되었다.

아들은 간단한 짐만 꾸려가지고 큰손자를 데리고 득달 같이 우리집으로 달려왔다.

작은손자의 독감이 다 나을 때까지 큰손자는 가족들과 떨어져 우리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워낙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르고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제 아빠가 혼자 돌아갈 때도 의연하기만 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해 늦여름에 대전 근교지역에서 뇌염이 많이 발생했었다.

아들은 남편이 근무하는 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다녔었는데

유치원이 끝나면 제 아빠의 퇴근시간까지 냇가로 풀밭으로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놀다가

퇴근하는 아빠와 함께 귀가했었다.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놀면서 얼마나 많은 뇌염모기에 노출되었을까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다. 

어렸을 때 오빠를 뇌염으로 잃은 아픔을 사무치게 겪었기 때문에 이만저만 걱정되는게 아니었다.

궁리 끝에 뇌염이 사그러질 때까지 서울에 사는 친정언니한테 아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아들은 서울에서 제 이모와 함께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 큰손자가 처해있는 상황이 그 때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기껏 독감을 피해서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해온 큰손자가 낮에는 활기차게 잘 놀았는데

밤이 되자 열이 펄펄 끓는 것이었다.

귀체온계로 체온을 재어보니 38.6도까지 치솟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체온이 몇 도 이상일 때 해열제를 먹이는지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었다.

급한대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안 먹어도 된다느니, 먹어야 한다느니 명쾌한 기준이 없어서 헷갈리기만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12시 가까운 늦은 밤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해열제를 먹이라는 것이었다.

손자를 깨워 해열제를 먹이고 머리에 찬수건으로 계속 냉찜질을 해주었다. 

잠시 후 열이 떨어지면서 손자는 컨디션이 좋아졌고 그 밤에 신나게 노래까지 불러주는 것이었다.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계속 체온을 체크하면서 우리 부부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만약을 위해서 낮에 해열제와 체온계를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 했다.


다음 날 아침을 일찍 먹고 손자를 데리고 소아과병원을 찾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병원에는 갓난아기부터 우리 손자 또래의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끝에 겨우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면봉을 콧 속 깊이 넣어서 검사를 할 때 손자가 어찌나 괴로워하던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A형 독감으로 판명이 나왔다.

손자는 처방해준 약을 먹고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그런데 밤이 되자 이번에는 내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체온이 38도 이상 올라가고 머리가 묵직해지면서 기침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올해는 독감 예방주사도 안맞았기 때문에 겁이 덜컥 났다.


다음 날 병원을 찾으니 소아과병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대기실은 초만원이었다.

요즘 독감이 한창 유행한다 해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검사 결과 다행이 독감은 아니고 몸살감기라 했다.


이후로 손자는 하루가 다르게 독감에서 벗어나고 나는 3일을 앓은 끝에 차도가 있었다.

심하게 앓은 것은 아니어서 매일매일 손자와 즐겁게 지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는 우리집에 있는 동안 할아버지한테 장기, 바둑, 오목을 열심히 배웠다.

 컴퓨터로 오목을 두면서 오목동자를 세 번이나 이겼다며 어찌나 좋아하던지.


손자가 6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작은손자도 상태가 좋아져서

어제 제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오랫만에 만난 손자들이 서로 안아주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