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꽃 이야기

말벌은 무서워

달빛3242 2019. 7. 1. 18:12

나는 벌에 트라우마가 있다.

벌은 크던 작던간에 무조건 경계를 하고 본다.

시골에 살면서 오빠시(땅벌), 꿀벌, 이름도 모르는 벌들에 쏘인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강력했던 벌침은 뭐니뭐니 해도 말벌에 쏘였을 때다.


어느날 아침에 꽃밭을 매고 있는데 말벌집이 있는 나무를 건드렸던가 보다.

갑자기 말벌이 윙윙거리며 난리가 나는가싶더니

머리와 손바닥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무시무시한 말벌한테 두 방이나 쏘였던 것이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서 해독주사를 맞고 치료를 받았다.

진통제도 먹었지만 지독한 통증은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면서

아주 조금씩 잦아들더니 저녁 무렵부터 겨우 견딜만 해졌다.

그 통증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질 정도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서 뽕잎을 따던 아주머니 한 분이

말벌에 한 방 쏘이고 사망했다는데

나는 두 방이나 쏘이고도 죽지 않았으니 감사해야 되나?

몇 년 전에는 옆지기가 꿀벌을 친다고 벌통을 가져온 적이 있는데

그 때도 꿀벌한테 인중을 강타 당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벌침이 신경통에 좋다면서 평생 신경통 걱정은 안해도 될 거라나?


다래나무 아취에 말벌 한 마리가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저 선명한 줄무늬만 봐도 치가 떨리는데 감히 허락도 없이!


이 놈이 꽤 낭만은 있어가지고 아름다운 다래꽃 그늘에 터를 잡았다.


말벌이 건축재료를 구하러 갔을 때 자세히 들여다 보니

모나지 않게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집 외벽의 무늬가 여간 멋있는게 아니다.


처음 발견한 5월 31일의 모습


6월 1일의 모습

오잉? 단 하루만에 집이 조롱박 모양으로 변해 있다니!

거참 신기하다.

그래도 나는 같은 공간에서 너와 상생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더구나 말벌집의 위치가 우리 가족이 시도때도 없이 자주 드나드는 대문아취가 아닌가?

우리 금쪽같은 손자들이 쏘인다면?

아흐, 생각하기도 싫다.


말벌의 집 짓는 기술이 신기하여 좀 더 관찰한 다음에

무허가건물을 철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몇날 며칠이 가도 건축에 진척이 없고 말벌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말벌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집주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미리 떠나버린 것일까?

새들의 먹잇감이 되어 사라진 것일까?

그렇잖아도 공들여 지은 집을 억지로 부순다는게 꺼림직했는데......


말벌집은 폐가가 되어 아직도 다래나무에 그대로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