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 - 페루⑧
(2010년 8월 20일)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일정대로 푸노를 향해서 계속 달렸다.
어젯밤 고산병으로 고생한 두 여성분은 멀미를 하도 심하게 해서
비닐봉지를 아예 입에 달고 가야 했다.
아내는 멀미 기운이 있을 때 오징어를 머금고 있으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염려했던 아내는 멀미도 하지않고 고산병 증세도 거의 없었다.
아내는 평소에 오징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여행할 때는 꼭 오징어를 챙긴다.
나한테는 별 효과가 없는데 아내한테는 오징어가 멀미약으로 특효가 있었다.
아내는 멀미하는 여자분들에게 오징어를 나눠주었다.
한 분은 계속 토해서 못 먹고
다른 한 분은 오징어를 먹고 바로 속이 가라앉았다면서 매우 고마워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앞으로는 오징어를 여행준비물 목록 1호로 정하겠단다.
알파카 제품을 파는 상점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키카 큰 라마가 환영 뽀뽀를 해준다.
뜰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마른 잔디를 뜯고 있었다.
주인이 풀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며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체험을 해보라고 했다.
원주민들은 알파카와 라마를 가축으로 키웠고 털을 깎아서 옷 등을 만들었는데
생후 일년 미만의 베이비 알파카의 가슴 부분의 털을 최고로 친다고 했다.
실크보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양모보다 따뜻하고 통풍성과 내구성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알파카 보다 한 수 위의 명품이 또 있다고 했다.
바로 ‘안데스의 공주’로 불려지는 비꾸냐이다.
위 사진에서 맨 앞의 동물 3마리가 그 귀하디 귀하다는 비꾸냐이다.
커다란 눈망울에 예쁘고 귀엽게 생겼으며 라마나 알파카보다 몸집이 훨씬 작다.
비꾸냐 털로 만든 코트는 가벼우면서도 겨울에 입으면 훈훈하고
여름에 입으면 시원하다고 한다.
비꾸냐는 해발 4,000m이상의 안데스 고지대에서 서식하며
여간해서는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옛 잉카제국에서는 비꾸냐 털로 만든 의류는 오직 왕만이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동물들은 이방인을 전혀 낯설어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와 주는 먹이를 잘 받아 먹었다.
라라야 온천
이곳은 해발 4,000m에 위치한 안데스 노상온천이다.
유황 냄새가 진동했다.
땅에서 솟아 나온 뜨거운 물이 도랑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
바닥이 붉게 보여서인지 더 뜨겁게 보였다.
이 수로는 물이 너무 뜨거워서 3초 이상 발을 담고 있을 수가 없다.
이 뜨거운 물이 긴 수로를 거치면서 차츰 온도가 내려가고
네 개의 욕탕을 차례로 거치면서 욕탕마다 다른 온도를 유지하게 되어있다.
각자 자기에게 알맞은 온도의 탕에 가서 온천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한 컷 찍었다.
발이 익는 줄 알았다.
우리 일행은 자리를 옮겨 알맞은 온도의 탕을 찾아 족욕을 했다.
아내는 온천의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 본다며 한 쪽 발만 물에 담갔다.
한참 후에 아내는 족욕을 한 발이 훨씬 시원하고 느낌이 좋다면서
확실히 온천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기족과 함께 온천에 온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라라야 온천에서 잠시 몸을 푼 일행은 다시 푸노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드넓은 초원에서는 소, 양들이 풀을 뜯고 있고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은 마른 풀로 덮여있어 노랗게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낮달만이 외롭게 떠 있었다.
건기라서 그런지 가도가도 계속 이런 풍경이 이어졌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다른 분들은 긴 여행과 고산병으로 지쳤는지 거의가 잠에 빠져있는데
아내는 잠도 자지 않고 여행을 즐기고 있어서 참 신통했다.
온살도린가 뭔가 하는 이상한 운동을 하더니 효과가 있나보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입이 짧은 아내는 아침도 거의 못 먹었는데 점심도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배가 고팠는지 빵 굽는 마을 오로페사의 빵을 조금 먹어 보더니
맛이 기가 막히다고 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빵을 다른 사람들도 먹어보더니
달지도 않고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아주 맛있다고 했다.
빵을 안 산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쟁반 만한 빵 두 개는 금방 동이 났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중에
길가에 집 모양으로 조그맣게 세워진 것들을 여러 번 보았는데
사망 사고가 난 자리라고 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으로
예쁘게 페인트칠 까지 하고 꽃도 놓여있다.
우리나라의 '사망사고 발생 지점'이라는 딱딱한 문구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운전자의 경각심을 더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해발 4,335m의 라라야 고개에서 버스는 잠시 멈췄다.
쿠스코에서 푸노까지 가는 도로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다.
시각으로는 이곳이 높은 곳인지 별로 못 느끼겠는데
몸은 완전히 고산지대에 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멀리 정상에 만년설이 덮여있는 산은 6,300m에 이른다고 했다.
도로 옆에는 원주민들이 알파카 제품을 진열해 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걸음을 걸을 때 몸이 약간 어질어질 했지만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전 8시에 쿠스코를 출발한 버스는 오후 6시 30분에 푸노에 도착했다.
저녁식사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은 송어 요리가 나왔는데
고산병 증세로 속이 매스꺼워서 거의 먹지 못했다.
우리 일행들 모두가 완전히 지쳐서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호텔로 들어갔다.
잘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버스를 탄 것 처럼 어지럽고 몸이 편치가 않았다.
푸노는 해발 3,800m가 넘는 고지대로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보다도 1,000여m가 더 높은 곳이다.
가슴은 답답하고 ,입은 마르고, 머리도 아프고......
고산병 증세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면서 심호흡을 하고
입 안이 말라서 계속 물을 마셨다.
여태까지 잘 견디던 아내도 많이 괴로워 했다.
중남미 여행 중 최악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