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팔

인도·네팔 여행 - 인도 <시크리성>

달빛3242 2012. 5. 30. 22:11

2012년 1월 2일

 

드디어 타지마할을 관람하는 날이 돌아왔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자이푸르에서 아그라로 이동했다.

출발할 때는 안개가 너무 짙어서 시야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너무 짧아 타지마할을 제대로 못 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유채꽃 향연이 시작되었다.

고속도로에는 자전거 오토바이를 비롯한 온갖 탈것들이 모두 등장하고

소떼와 양떼까지도 가세를 했다.

갓길로 역주행을 하는 자동차가 있는가 하면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맞은 편에 있는 휴게소에 들르기 위해서

고속도로에서 유턴을 하기도 했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도 아무 일 없이 모든 것들이 흘러가는게 신기하기만 했다.

마음은 타지마할에 가 있는데

타지마할은 아껴두고 먼저 시크리성부터 관람을 하기로 했다.

시크리성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무굴제국의 3대 황제였던 악바르가 등장한다.

악바르에게는 제국을 물려 주어야 할 아들이 없었다.

이 때 시크리에 살고 있던 한 이슬람교 성자가 악바르에게 내년에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예언을 했는데 이듬해 정말로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이 후에 아버지 악바르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무굴제국 제4대 황제에 등극하게 되는 제항기르이다.

황제는 시크리의 성자를 지극히 신뢰하게 되고 그에게 소원을 물었다.

시크리의 성자는 악바르에게 시크리를 번성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악바르 황제는 시크리에 성을 건설하고

무굴제국의 수도를 아그라에서 시크리로 옮기게 된다.

그러나 시크리는 식수가 부족하여 많은 인원이 거주하기에 불편하였고

그가 신뢰하던 성자도 죽었기 때문에 다시 수도를 아그라로 옮기게 된다.

시크리가 수도로서의 기능을 수행 한것은 1571~1585년 고작 14년 뿐이었다.

그후 400년 동안 시크리성은 폐허로 방치 되었었다.

 

시크리성

 

'승리의 문'이라 불리는

높이 54m에 이르는 시크리성의 웅장한 관문

 

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어야 한다.

바닥에 새똥과 벌똥이 많아서 양말을 다 버렸지만

세계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불편이라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시크리성은 붉은 사암과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화려한 내부의 모습

 

천정의 문양

 

화려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이 곳에 어울리는 표현이 불가하다.

 

 

 

대리석을 파내서 만든 창문의 무늬가 너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창문마다 똑같은 무늬가 없을 정도로 무늬가 다양했다.

 

작은 창 틈에 카메라를 가까이 대고 찍어 본 어설픈 사진

 

예언자인 성자를 모신 이슬람 사원

이곳만 특별히 밝은 색조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악바르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황제이다.

시크리성은 힌두교를 상징하는 연꽃무늬와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이슬람을 상징하는 아취가 어우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