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사진

아름다워라! 선운사 단풍②

달빛3242 2012. 11. 19. 15:43

내가 가장 가슴 앓이를 심하게 하는 계절은

봄날이 지나갈 때도 아니고

한 해가 저무는 때도 아니다.

낙엽 지는 늦가을 이맘 때가 가장 아쉽고 허망하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 한 구절에서

모란을 낙엽으로 바꾸어 읊조려 보니 꼭 내 맘이다.

 

언제나 처럼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거리가 3Km 남짓 되는데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서 등산 코스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깝다

도솔천을 사이에 두고 큰 길과 오솔길 두 갈래 길이 있다.

올라갈 때는 자동차도 지나갈 수 있는 큰 길을 따라 단풍을 즐기며 천천히 올라갔다.

 

 

 

 

멀리 얼굴을 드러낸 바위는 도솔암에서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반갑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듯한 사람의 얼굴 형상으로 보인다.

 

 

기왓장에는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소망이 적혀있다.

그 소망들이 모두 이루어지길 바라며......

 

 

 

 

도솔암 바로 위쪽에 있는 수직암벽에는 높이 15.6m의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하단의 조각이 선명하지 않아서 웬지 미완성으로 보이지만 소박한 모습에 정감이 간다.

 

 

마애불 주변에 있는 커다란 애기단풍나무는 꽃보다도 몇 배나 더 곱다.

 붉디붉은 핏빛 단풍이 한없이 처연하게 보였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바로 이런 모습일까?

 

 

산을 내려올 때는 오솔길을 택했다.

낙엽을 밟으며 호젓하고 쓸쓸한 기분을 즐길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나무들은 조용히 비워내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오색단풍의 향연은 끝이 없는데

텅 비어있는 단풍길에 늦가을 오후의 긴 그림자만 드리워지고 있다.

이 길은 빨리 지나가면 안된다.

너무나 아쉽고 아까워서 가다가 멈추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땅바닥에 짙은 초록색으로 깔려있는 상사초는

벌써부터 내년 9월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가을은 속절없이 떠나가고

이제 내 마음 속의 가을과도 작별을 할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