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항산대협곡(천계산)
2014년 10월 15일
구련산에 이어 천계산으로 이동했다.
태항산 남쪽에 위치한 천계산은 말 그대로 하늘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라는 뜻이다.
회룡 천계산
입구의 큰 돌에는 역시나 붉은 글씨로 산 이름이 쓰여있다.
천계산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전동차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갔다.
십자령광장
20여 분 만에 산 중턱 넓은 고갯마루인 십자령광장에 도착했다.
어려운 구간은 전동차를 이용하니 너무나 편하고 관광하기가 수월했다.
십자령광장에서 바라보는 천계산 협곡
북한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기력을 충전한 다음에
노야정에 오르기 위해 케이불카를 탔다.
10월 중순의 태항산은 단풍이 조금씩 물 들어 가고 있었다.
계절이 우리나라와 거의 같은 속도로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뾰족하게 솟아있는 산이 바로 우리가 올라가게 될 노야정이다.
하얗게 보이는 지그재그 길은 올라가는 길이 아니고 내려올 때 이용하는 미끄럼틀이다.
옆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사진에는 희미하게 조금밖에 안 보인다.
케이블카는 10여 분 만에 정려석광장에 도착했다.
해발 1,570m의 노야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이 840여 개가 된다고 했다.
숫자에 놀란 몇몇 친구들은 오르기를 포기하고 정려석광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19명 중 11명이 노야정으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은 발을 딛는 계단의 폭이 좁아서 올라가기가 매우 불편하고 위험했다.
양쪽 난간대에는 복을 기원하는 오색의 리본이 매어져 있다.
드디어 노야정 정상이다.
노야정은 노자가 42년간 도를 닦은 도교사원으로 노자에 대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어느 날 노자는 자신의 도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는데
이 때 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나서 노자를 구했다고 한다.
이 용들은 아홉 개의 봉우리를 이루며 와불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노야정을 정복한 건각의 친구들이
날아갈 듯한 정자를 배경으로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우리 모두 2년 후에도 건강하게 이 모습 이대로 유지하자.'
마음 속으로 기원하면서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곧바로 되짚어 내려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십자령광장으로 돌아왔다.
다시 전동차를 타고 운봉화랑 구간을 관광하기 위해서 십자령광장을 출발했다.
운봉화랑은 절벽 위에 구름이 덮여있을 때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동차를 타고 산 허리를 360도 돌며 천계산 협곡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구간으로
출발지점까지 돌아오는 거리는 약 10Km라고 한다.
전동차는 절벽 가장자리에 만들어진 좁은 도로를 따라 달리며
전망대가 설치된 장소에서 잠시 머물며 구경할 시간을 주었다.
청선대(廳禪臺)
수직으로 우뚝 솟은 단애가 아찔해 보인다.
무지개떡처럼 층을 이룬 바위의 색깔이 너무나 아름답다.
세월의 두께가 얼만큼 쌓여야 저런 모습이 나타나는 걸까?
시담대(망선각)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약 18m의 철골 구조물이 허공 중에 돌출해 있는 시담대(試膽臺)는
말 그대로 담력을 테스트하는 전망대이다.
시담대 정면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는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태항와불이라 불리운다고 했다.
시담대가 망선각(望仙閣)이란 또 다른 이름이 붙은 것은
멀리 앞 산에 누워있는 부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허공에 떠 있으니 아찔한 쾌감이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시담대가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우리가 지금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전망대 바닥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서 발 아래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시담대에 한꺼번에 올라갈 수 있는 인원은 6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문금대(聞琴臺)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답다.
난간을 잡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면 현깃증이 난다.
운봉화랑 여러 곳의 전망대를 둘러보면서 참으로 멋진 관광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괘벽공로
괘벽공로는 바위를 뚫어 만든 산악도로를 말한다.
거대한 바위 속으로 나있는 도로는 세상과 고립되다시피 살던 곽량촌 주민들이
기계의 도움 없이 오직 정과 망치만을 가지고 직접 뚫었다고 한다.
이 깊은 산 속에 동력을 끌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250m나 되는 이 도로는 1972년부터 무려 5년에 걸쳐 만들어진 기적의 터널로
거대한 절벽에서 2만6,000㎥의 돌덩어리를 캐내고, 정 12톤을 마모시켰으며
8파운드짜리 쇠 추 4,000개를 소모했다니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눈물겨운 사투였을 것이다.
여러 개의 네모난 구멍이 보이는데 이는 조명과 통풍의 역할을 하면서
공사과정에서 파낸 돌을 버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장영쇄
이 사람은 괘벽공로를 만드는데 일등공신인 현대판 우공이다.
중국인들에게 널리 칭송을 받는다고 한다.
‘우공이산(牛公移山)’은 어리석은
천계산을 뚫어 길을 낸 주민들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천계산 관광은 끝을 맺었다.
밤에는 신항시내에서 발마사지로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