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서유럽(프랑스 - 루브르박물관)

달빛3242 2016. 3. 9. 08:30

2014년 5월 18일(일) 오전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은

바이킹의 침략으로부터 파리를 지킬 목적으로 건설한 중세 양식의 성채였는데

프랑수아 1세에 의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고

그 뒤를 이은 프랑스의 왕들은 4세기에 걸쳐서 이 건물을 개조하고 확장하였다.

그러다기 1793년 궁전 일부가 중앙 미술관으로 사용되면서

루브르는 궁전의 틀을 벗고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미술품과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회화, 조각 등

37만여 점의 다양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입구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의 광장 중앙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명물로 자리잡은 높이 22m의 유리 피라미드가 있다.

1989년 중국계 미국인 ‘이오 밍 페이’의 작품으로

기존 루브르 건물의 웅장함과 달리 현대적이고 가벼운 느낌 때문에

건축 당시 논란이 많았으나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이 되었다.

유리피라미드 주변은 분수가 조성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드농관 외부 모습 

유명한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며

루브르궁에서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제일 먼저 시작한 곳이다.

 

 

 

 

 

 

나폴레옹 홀

나폴레옹 홀에는 매표소가 있고 

3개의 전시관인 드농관, 리슐리외관, 쉴리관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어

이곳에서 부터 루브르 박물관의 관람이 시작된다.

지하인데도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지하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않는다.

 

 

리슬리외관 입구 통로

 

 

미로의 비너스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는 1820년 그리스의 에게해 밀로스 섬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마침 그 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해군이 입수하여 루이 18세에 헌납되었고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의 보물로 꼽힌다.

BC 2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헬레니즘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너스의 뒷모습

 

 

천정에도 화려한 그림과 조각들이 고개를 아프게 한다.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 다비드

이 작품의 주제는 평화와 화해의 메세지이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Momulus)는 도시에 여자가 적어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이웃 도시 사비니를 침략하여 여인들을 납치해오도록 명령한다.

납치 당한 사비니 여성들이 로마 남성들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아가고 있던 중 

사비니인들이 빼앗긴 여성들을 되찾기 위해서 공격해 오는데

이 싸움을 말리는 사람들은 사비니 여인들이다.

사비니 여인들의 필사적인 중재로 양측은 전쟁을 중단하고 협정을 맺게되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을 한 마디로 쉽게 요약하면 친정과 시댁의 싸움을 말리는 며느리라고 하면 될까?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 다비드

은행가의 아내여던 레카미에는 나폴레옹 집권시 당대 최고의 미녀로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다. 

레카미에 부인은 이 작품에 불만을 느끼고 다른 화가에게 다시 초상화를 주문하였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다비드는 이 그림의 완성을 포기해서 끝내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모나리자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는 드농관 2층에 있는 이탈리아 회화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명실공히 세계 회화의 최고 걸작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넓직한 전시실의 벽면 한쪽에 걸려있는 모나리자 앞에는 수 많은 인파가 북적거려 관람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가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않고 오랫동안 모나리자에 빠져있는 사람들 때문에 겨우 겨우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방탄유리 속의 모나리자는 그 신비한 미소를 머금은 채 사람들의 발길을 한없이 붙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한참 동안 모나리자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그만 가이드와 일행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순간 아찔함에 사방을 정신없이 둘러보니

우리의 가이드 서양 사람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는 큰 키에 우산을 높이 들고 있어서 금방 찾아 낼 수 있었다.

 

모나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방탄유리를 씌우고 그림 밑에는 선반 모양의 보호대를 설치했다.

그 다음에는 그림을 중심으로 반원 모양의 나무 휀스를 둘러치고

또 그다음에는 통제선을 설치해 놓아서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큰벽에 덩그라니 걸려있는 가로 53Cm, 세로 77Cm의 작은 그림을 멀리에서 보려니 감질이 나기도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무려 40조원에 이른다는 귀한 그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나리자는 24세 때 다빈치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제작 년대는 1503년~1506년 경이며 다빈치가 죽기까지 10여 년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다빈치는 말년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가서 모나리자를 왕에게 주었다고 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외젠 들라크루아

이 그림은 1830년 7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던 7월 혁명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한가운데 군중을 격려하며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의 여성은

과거의 그림에 주로 나타났던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으로

당시에는 품위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 폴 들라로슈

나폴레옹은 이 그림에서처럼 큰 말이 아닌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으며

속병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한 손을 가슴 속에 집어넣고 다녔다고 한다.

 

 

 

 

피에타

 

 

 

루브르 박물관의 방대한 전시품을 관람하려면 꼬박 4~5일은 걸려야 한다는데

우린 고작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다음에 또 오라는 사전답사 정도였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