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2일
잔뜩 흐린 날 늦은 오후에 묘지관광을 하게 되었다.
사실 묘지관광은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고 날도 저무는데
시내의 다른 곳을 더 자세히 보고 싶었었다.
그런데 !!!
담장 밖에서 보아도 범상치 않은 저 아름다운 건물들이 묘지란다.
빨리 들어가 보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생겼다.
들어가는 입구이다.
규모만 작을 뿐 그리스 신전이다.
'REQUIESCANT IN PACE ' 편히 쉬소서.
잘 정돈 된 곳에 모양도 크기도 가지가지인 묘지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건축박물관이라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건축양식과 조각 등이 매우 뛰어나서
묘지 중 70기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죽은 자의 명성과 부를 반영하듯 하나 같이 호화롭기 그지없는 묘지였다.
1882년 부터 조성된 이 묘지에는 13명의 대통령과 귀족가문의 묘가 주를 이루고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이곳에 묘지터를 얻을려면 최소한 아파트 5채 값의 돈이 필요하고
돈이 있어도 집안의 명성 등을 고려하여 심사를 받아서 통과를 해야 한다고 한다.
통과를 했더라도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리가 없으면 기다려야 한다.
이곳에 묘지를 쓴 사람의 집안이 망하거나
자손이 끊어져서 묘지를 돌볼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곳의 장례문화는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관에 넣어
이곳에 갖다 놓는다고 했다.
가이드의 말에 갑자기 시신 썪는 냄새가 밀려오는 듯 했다.
실제로 여름에는 시체 썪는 냄새도 많이 나고 파리도 많다고 했다.
에바 페론의 묘지
다른 묘지에 비해 규모가 작고 호화로운 조각상이나 장식품 같은 게 별로 없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의 두번 째 부인이었던 에바의 묘지 앞에는
수많은 참배객 및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똑똑한 가이드를 따라 반대편으로 들어와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그 앞을 지나갈 수 있었다.
에바 페론의 생애를 잠깐 짚어보면
영화 '에비타'의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에바 페론은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다.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나이트클럽의 댄서, 라디오 성우, 영화배우에 도전했지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에바가 방송국 성우로 있을 당시 육군 대령이었던 페론을 만나 일생일대의 대전환을 맞는다.
후에 페론은 대통령이 되고 에바는 27세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에바는 불우했던 시절을 잊지않고 서민과 빈곤층을 돕는데 적극 나서
사회적 약자 편에서 헌신해 노동자 서민들에게 그녀는 성녀였다.
반면에 상류층 부자들에게는 무지하고 오만한 창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에바는 자궁암과 척수 백혈병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드라마틱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죽어서도 그녀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후안 페론이 군부에 쫓겨 망명길에 올랐을 때 그녀의 시신도 이곳저곳을 떠돌았고
페론 반대파 군부 지도자들에 의해 도난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죽은 지 24년 만에 레콜레타 공동묘지에 조용히 잠들었다.
지금도 에바는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이 묘지는 항상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안 봤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묘지에서 얼마 떨어지지않은 곳에 있는 5성급 호텔
우리의 정서와는 달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묘지를 혐오시설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이 부근의 땅값이 매우 비싸다고 했다.
저녁식사는 유명한 극장식 호텔에서 공연을 보면서 여유있게 즐겼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해서 겨우 한 장 살짝!
이 악사는 혼자서 여러가지 악기를 다루면서 토속적인 음악을 훌륭하게 연주해 주었다.
공연의 맨 마지막에는 불이 꺼지면서 자막에 에바페론의 모습이 나타났다.
순간 장내는 갑자기 숙연해지면서 숨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흐르고
여자 가수가 등장해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부르기 시작했다.
낮에 보았던 에바의 묘지가 떠오르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처연하고도 감동적이었다.
이날 공연의 최고 주인공이었던 탱고 무용수 커플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나갈 때 문 밖에 나와서 배웅하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잡아주어 나도 한 컷 찍었다.
요염하고 섹시한 여성 무용수와
카리스마 넘치는 강렬한 눈빛의 남자 무용수가 참으로 멋있었다.
하루 동안 바쁘게 돌아다니며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다 보느라고
가슴 깊이 새기고 느낄 틈은 없었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크게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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