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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어머님 소천

by 달빛3242 2017. 2. 9.

평생을 누구에게 모진 말씀 한 번 안하시고 순박하게 살아오신 어머니께서 

하늘이 유난히도 푸르던 2016년 10월 21일 향년 97세로 소천하셨다.



어머니와의 따뜻하고 가슴 아팠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그립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나를 위해

오전 수업이 있는 날에도 항상 누룽지를 싸주셨다. 

 겨울에는 춥다고 바지 두 개를 겹쳐서 가운데에 솜을 넣어 솜바지로 만들어

자식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지극정성을 다 하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한참 공부해야할 시기에 매일 새벽 두 시까지 소설책을 읽느라 공부를 소홀히 해서

 아버지께 크게 꾸중을 듣고 철없는 마음에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마을 뒷산을 넘어 무작정 걷다보니 이십리가 넘는 외가 근처 동네까지 오게 되었다.

가출한 신분이라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외갓집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마침 논에 쌓아놓은 볏단이 있어서 볏단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의 끝자락 2월이어서 어찌나 춥던지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인자하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가출을 해버리면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를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 집에 돌아가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집쪽으로 향하는데

갈증이 너무나 심해서 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산속 외딴집으로 들어갔다.

"학생, 엊저녁에도 이 앞으로 지나갔었지?"

친절한 주인은 사태를 짐작하고 따뜻한 밥까지 차려주셨다.

(한참 후에 부모님과 담배 한 보루를 사들고 찾아가 감사인사를 전했음)

낯선 집에서 밥까지 얻어먹고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는 밤새 나를 찾아 잠을 한 숨도 못 주무셨다고 하셨다.

 나의 철없는 가출사건은 하루 만에 끝이났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면 나는 아마도 가출청소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식을 키워봤기에 그 때의 어머니 심정이 어떠셨을지 짐작이 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어느 따뜻한 봄날 시골집 마당에서 풀을 뽑고 계신 어머니 -


어머니 말년에는 낙상으로 고관절을 다치시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하셔서

4년이 넘는 세월을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요양원에 계실 때 어머니를 찾아뵈면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 하러 왔어? 바쁜데 자주 오지마."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주변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를 엄청 기다리셨다고 한다.

언제나 자식에 대한 배려가 먼저이셨던 어머니께 마음으로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억장이 무너진다.

인자하셨던 분이라 자식의 불효를 용서하시고 천국으로 가셨으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염할 때 장례지도사가  "어머니 사랑해요." 라고 말하라는데 너무 죄송해서 목이 메어 그 말이 안나왔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먹먹하여 앞이 잘 안 보인다.

'어머니, 사랑해요.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모범적인 삶의 가르침을 본 받아

형제들과 우애하며 바르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아버님에 이어 어머님까지 두 분이 양지바른 선산에 나란히 누워계신다.

두 분이 20여 년만에 해후하셔서 도란도란 자식들 얘기를 하고 계실까?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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