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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추억을 찾아서

by 달빛3242 2017. 2. 16.

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추위가 한풀 꺾이자 벌써 남녁에서는 꽃소식이 들려온다.

통도사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는데 구경 한번 가볼까?

동해바다에 가서 탁 트인 바다를 구경할까?

이곳 저곳 떠올리다가 초임지도 돌아볼겸 요즘 굴이 한창이라는 서해바다에 가기로 결정했다.

나의 초임지는 서해바다에서 가까운 보령군 천북면 소재 낙동초등학교이다.  

첫발령을 받고 열정만 앞선채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그 때의 모든 것들이 그립기만 하다.

살아온 길이만큼 그리운 추억들이 많이 쌓이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앞만 보고 살기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때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이쁘기도 해라!'

대전에서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한 이곳은 나의 첫발령지인 낙동초등학교이다.

이곳에서 겨우 2년 동안 근무했지만 가장 그립고 애뜻하게 기억되는 곳이다.  

잔디가 깔려있는 운동장 넓이만 그대로이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40여 년 전의 우중충했던 건물은 간곳 없고

밝고 산뜻한 색깔로 알록달록 색칠을 한 건물이 촌스럽지도 않고 참 예쁘기도 하다.

옛날의 그 모습이 아니어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원래는 건물 두 동이 나란히 있었는데 앞쪽의 건물은 허물고 그 자리에 꽃밭을 만들었다.

영산홍꽃이 피면 알록달록한 건물과 어울려 정말 멋질 것 같다.



그때 그 소나무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왼쪽 위에 분재처럼 보이는 벚나무를 보니 아련한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학교에 벚나무라곤 딱 한 그루밖에 없었던 이 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4월의 어느 일요일

혼자서 당직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꽃봄에 온종일 적막감이 도는 학교를 지키고 있으려니 심심하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신발을 벗어 벚꽃에 던져 꽃잎을 흩날리며 벚꽃놀이를 즐겼었는데

이 나무는 그 짖궂은 여선생을 기억하고 있을까?



40여 년 전 그때는 벚나무도, 나도 청춘이었다.

이젠 너도 늙고, 나도 늙고 추억만 새롭구나.



'너는 어쩌다 이렇게 버려진거니?'

교문 아래 첫번째집, 첫발령을 받고 전근갈 때까지 2년 동안 세들어 살던 집이다.

언제부터 방치되었는지 덤불로 뒤덮여있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흉물스런 모습이다.

이 작은 집에서 부부교사를 포함한 선생님들이 5명이나 세들어 살았었다.

모두 단칸방 하나씩 차지하고 복닥복닥 지냈는데 겨울에는 방안의 물이 얼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추웠었다.



'옆모습도 처참하게 일그러져버렸구나.'

결혼하기 1년 전 그 멀리에서 나를 찾아왔던 젊은 남자가 있었다.

처녀선생 소문날세라 마지막 버스를 타고 밤에 몰래 뒷창문을 넘어 들어왔던 그 남자.

그런데 그 밤에 한 학부형님이 직접 농사지은 수박 한 통을 가지고 찾아오셨다.

인기척에 놀라 남자의 구두를 얼른 숨기고 남자는 좁은 벽장 속으로 잽싸게 몸을 구겨넣었다.

그날 따라 부형님은 왜 그리도 오랫동안 머무르셨는지!

벽장 속에서 청년이 재채기라도 하면?

벽장문을 꽉 닫았으니 질식이라도 하면?

 그 때는 조마조마하고 안절부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억이다.

이듬해 우여곡절 끝에 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사연많은 3년 동안의 연애는 종지부를 찍고

그는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뒷창문이 아닌 앞문으로 버젓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혼의 1년을 참깨 들깨 볶으며 이곳에서 알콩달콩 보내게 되었는데

북풍이 심히게 몰아치던 어느 추운 겨울날

둘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하마터면 이 좋은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한날한시에 손잡고 소천하실 뻔 했다는~~ㅋ



이곳은 간척지에 있는 물웅덩이다.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간척지에는 우리 부부가 즐겨 낚시를 하던 물웅덩이가 있었다.

제법 낚시가 잘 되어서 붕어도 잡히고 뱀장어도 심심찮게 걸렸었다.

그 웅덩이는 사라졌지만 가까이에 그와 비슷한 웅덩이가 있으니 언제 한번 낚시하러 오자고 의견일치~



둥그렇게 보이는 산 이름은 진당산이다.

자주 산책을 했던 산인데 선배선생님 한 분이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는 중에

UFO가 이 산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아이들과 같이 보았다면서 실감나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산 밑으로는 넓은 갯벌이 이어지고 물이 빠지면 구멍이 숭숭 뚫린 뻘에서

게와 망둥어가 숨바꼭질을 하며 기어다녔었다.

스물네살 청춘이었던 우리는 망둥어를 잡는다고 허벅지까지 빠져가면서 뻘을 헤집고 다녔었다.

참 좋은 시절이었는데 세월은 어느덧 40여 년이 흘러가버렸다.


 눈물겨운 풍경 하나가 아릿하게 떠오른다.

저 산 아래 양지바른 바닷가에서 웅크리고 앉아 굴을 까던 미숙이,

 4학년밖에 안된 아이가 빨개진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바다에서 금방 딴 굴을 까고 있었다. 

나를 보고 수줍게 웃던 그 아이, 지금은 어디서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의 교직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프고 슬픈 일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교사 첫해에 1학년이었던 우리 반 아이 한 명을 바다로 보낸 것이다.

44번 김영미, 귀여운 그 아이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안타깝게도 밀물에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나에게는 숫자 4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아이의 얼굴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들쑥날쑥 아무렇게나 잘린 그 아이의 단발머리를 가지런히 다듬어주곤 했었는데...

순박한 아이들은 솜씨는 없고 열정만 가득한 나의 어설픈 가위손에 기꺼이 단발머리를 맡기곤 했었다.


몇년 후, 공교롭게도 다른 학교에서 또다시 44번 김영미를 만나게 되었다.

이름도 유행이 있어서 그 당시 영미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내 마음 속 주홍글씨 44번이냐고!

바다로 간 첫번째 영미와 숫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1년 동안 그 아이를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긴장했던 한해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퇴색되지않고 줄줄이 엮여나오는 추억들이

그리움을 주기도 하고 아픔을 주기도 한다.



초임지에서 추억의 장소를 찾아다니며 한동안 머물다가 천북 굴축제장으로 향했다.

바닷가 작은 마을은 평일인데도 차들이 뒤덮고 있어서 주차하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굴축제장은 그만그만한 가게들이 굴구이, 조개구이 등 거의 똑같은 메뉴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우리도 한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굴, 새조개, 키조개 등 5만원어치를 시켰는데 질리도록 먹고도 많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팔각정자 보령정


이곳은 옆지기의 초임지 보령군 청라면 소재 청라초등학교이다.

나의 초임지 학교 건물은 알록달록한데 여기는 울긋불긋이다.

요즘은 이렇게 색칠하는게 유행인가?



옆지기도 초임지인 이곳에서 많은 추억을 떠올리며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오래된 추억 위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면서

둘이서 참 많은 곳을 돌아다닌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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