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체르마트에서의 첫날,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젖히고 날씨부터 확인했다.
흐린 날씨에 바람이 많이 분다.
'에효~덕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가 보다.'
그래도 산악지대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니까 내심 기대를 하면서 가이드를 따라나섰다.
체르마트의 거리는 꽃으로 장식된 건물들이 많아서 흐린 날씨에도 화사하다.
오늘의 일정은 이번 여행에 가장 기대가 큰 마테호른을 보기 위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다.
체르마트 중앙로를 따라 '마테호른 파라다이스 탑승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탑승장에 세워진 전광판을 보니 우리가 오르려는 전망대에 빨강불이 켜져있는 게 아닌가!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케이블카 운행이 정지되었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계획을 변경하여 오늘 일정을 내일 일정과 바꾸기로 했다.
발길을 돌려 마테호른 파라다이스 탑승장에서 내려와 '로트호른 파라다이스 탑승장'으로 이동했다.
이곳도 빨강불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도 초록불이 켜져있다.
처음에는 푸니쿨라를 타고 수네가 파라다이스까지 올라갔다.
땅을 뚫어서 만든 급경사길이어서 앞좌석과 뒷좌석의 경사가 심하고 속도도 너무 빨라서 조금 무서웠다.
도
수네가에서 블라우헤르드까지 곤돌라를 이용하고,
다시 환승하여 블라우헤르드에서 로트호른 파라디이스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니 산허리에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뚜렷하게 보인다.
만약에 케이블카가 없었다면 저 길을 따라 3,000m가 넘는 이곳에 오를 수 있었을까?
새삼 문명의 이기가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트레킹의 출발지점인 로트호른 파라다이스에 도착했지만 날씨는 여전히 흐린 상태였다.
오늘의 일정은 해발 3,103m인 로트호른에서 3,415m인 오버로트호른까지 왕복 트레킹을 하는 것이다.
일정표에는 총길이 4.5Km에 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되어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오버로트호른이 바로 눈 앞에 떡 버티고 있다.
저 꼭대기까지 고도차이가 300m 이상이나 되는 고산 왕복트레킹을 해야 한다.
이곳에서 안타깝게도 옆지기는 트레킹을 쉬어야 했다.
여행 떠나오기 며칠 전에 배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제 너무 무리를 해서 다리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편은 로트호른 전망대에서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용감하게 트레킹을 택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로트호른에서 한참 내려간 다음에 계곡에서 다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거대한 핀델 빙하가 보인다.
날씨가 흐려서 하늘과 빙하가 맞닿아 있어 어디서부터 빙하인지 구분이 안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주변의 설산들이 나타났어야 하는건데 아쉬움이 컸다.
지그재그 길을 숨차게 올라오다가 뒤돌아보니 멀리 우리가 출발했던 로트호른 파라다이스가 보인다.
옆지기는 저기서 돌탑을 쌓으면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탑을 쌓고 있는걸까?
오버로트호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삭막한 곳이었다.
고산 식물도 많이 보이지 않고 바위와 돌너덜이 계속 이어졌다.
몇번씩 쉬어가며 힘들게 올라온 오버로트호른 정상이다.
트레킹 출발지인 로트호른 파라다이스를 내려다 보며 정상 정복의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높은 봉우리들은 다 구름 속에 묻혀있고
계곡으로 흘러내린 빙하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날씨가 좋은 날 올라온다면 환상적인 경치를 보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낯익은 산 봉우리 하나,
그토록 보고싶었던 마테호른이 구름을 휘감은채 모습을 나타냈다.
이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감동스럽고 황홀했는지 모른다.
실제로는 처음 대면하는 산이지만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서 많이 접했던 너무도 낯익은 산이다.
구름이 가리고 있는 부분도 머릿속으로 훤히 그려질 정도로 익숙하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산이다.
내일은 전체를 다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아쉬움을 삭여야 했다.
춥고 전망이 좋지 않아 정상에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어서 20여 분 만에 하산을 시작했다.
위 사진은 오버로트호른에서 가장 위험했던 구간이다.
경사진 바윗길 밑으로는 험한 낭떠러지인데 스틱을 꽂을만한 곳이 없어서 앉은 채로 간신히 기어와야 했다.
아차 실수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알프스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모든 시설이 거의 완벽했는데 이 위험한 곳에 왜 밧줄을 설치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는 법,
숨을 헐떡이며 어렵게 올라갔던 길이 내려갈 때는 너무나 쉬웠다.
스틱 두 개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오버로트호른을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밧줄을 잡고 내려와야 하는 험한 구간에서는 스틱이 오히려 걸리적 거리기도 했지만
고산 트레킹에 스틱 두 개는 필수임을 확실하게 알았다.
일정표에는 3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라고 했지만 우린 4시간이나 걸렸다.
오르막 길에서는 얼마나 숨이 차던지 오래 걸을 수가 없어서
몇 걸음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를 반복하면서 쉬엄쉬엄 올라갔기 때문이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고도가 높아서 무척 힘들었던 트레킹이었다.
로트호른에 내려와 보니 옆지기는 약속대로 돌탑 하나를 멋지게 쌓아놓았다.
이 탑이 무사한지 몇 년 후에 다시 찾아와 볼까? ㅎㅎ
로트호른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는데 눈이 내려서 운치를 더해주었다.
날씨가 좋아 눈 앞에 설산이 펼쳐졌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 대신 눈 내리는 운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는 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곤돌라를 타고 수네가로 내려가는 도중에 눈은 어느새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곤돌라의 유리창은 빗방울화가의 그림처럼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수네가에서 따끈한 차 한 잔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푸니쿨라를 타고 체르마트로 돌아왔다.
일찍 하산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옆지기와 시내구경에 나섰다.
체르마트 기차역, 장난감 같은 전기택시
이곳에서는 자동차 운행이 금지되어 있어서 대부분 관광객들이 도보로 다닌다.
도시 끝에서 끝까지는 15분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교통수단으로는 말이 끄는 마차와 전기자동차가 있다.
그러니 공기가 맑고 맑고 또 맑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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