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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장수말벌에 쏘이다

by 달빛3242 2021. 4. 29.

세상에 이런 일이!

어제 저녁 6시경 옆지기와 상추를 뜯다가 벌에 쏘였다.

그것도 벌 중에 가장 크고 악명 높은 장수말벌에 손가락을 쏘인 것이다.

상추잎을 뜯으려고 손을 넣는 순간 따끔하더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통증이 엄습해왔다.

손가락을 보니 작은 구멍이 뚫리고 피가 나와서

벌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독사에 물린 건 아닌지 겁이 덜컥 났다.

옆지기가 상추를 젖히니 그 속에 뜻밖에도 장수말벌 한마리가 숨어 있는게 아닌가?

오호라, 독사가 아니고 장수말벌이었구나!

인정사정 없이 그놈을 때려 잡았다.

나도 운이 나쁘지만 생명을 잃은 장수말벌은 더 운이 나쁘다.

통증이 심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급히 차를 몰고 옥천으로 내달렸다.

예전에도 장수말벌보다 조금 작은 말벌에 2방을 쏘여서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해독제도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는 통증의 강도가 조금 약했다.

동네를 벗어나 큰길가에 있는 보건소 옆을 지나다가 급한 김에 보건소로 먼저 향했다.

보건소장이 퇴근하려던 참이었는지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막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것이었다.

급히 손을 흔들며 차를 멈추게 한 다음 사정을 말하니 안으로 들어가 해독제 한알을 주어서 바로 삼켰다.

막 퇴근하려는 분을 붙잡고 염치없게 폐를 끼쳐서 너무나 미안했다.

약을 먹으니 기분 탓인지 통증이 조금 덜하는 것 같았다.

옥천까지 가서 주사 맞는 것도 싫고(늙어 죽을 때까지 주사는 무서울 것이다)

뭔일 있으랴 싶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옆지기가 가족카톡방에 벌사진과 함께 사건의 전모를 올려버렸다.

옆지기에게 왜 애들 걱정하게 벌 쏘인걸 알리냐며 핀잔을 주었더니

옆지기 하는 말이 가족의 행불행은 모두가 같이 알아야 한다나?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아들이 놀라서 전화하고 이어서 며늘아기, 손자들까지 모두가 전화를 해서 걱정을 해주었다.

그 중에 압권은 우리 작은손자의 영상통화 내용이다.

작은손자가 걱정을 하면서 벌에 쏘인 손가락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벌에 쏘인 가운데 손가락만 펴서 보여주니

"할머니, 그거 욕하는 손가락이네요."

통증이 심한 중에도 초등학교 2학년 작은손자의 엉뚱한 발언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며늘아기의 처방대로 냉찜질을 하고 항생제를 바르니 벌에 쏘인 후 4시간이 지난 10시경 부터는

욱씬거리던 통증이 많이 잦아들고 상태가 좋아졌다.

 

아, 다행이다 내가 벌에 쏘여서!

상추를 같이 뜯던 옆지기도 아니고, 아들 며느리도 아니고, 금쪽 같은 손자들도 아니고

내가 우리집 대표로 쏘였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손자들이 시골에 오면 이것저것 체험을 시켰는데 큰일 당하지 않고 모두가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세지였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손가락의 붓기는 그대로인데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경황 중에 자세히 보지 못했던 장수말벌을 살펴보기 위해서 상추밭으로 가보니 사체가 보이지 않았다.

부지런한 새가 물어갔나 하던 찰나에 개미들이 뭔가를 옮기는 것이 포착되었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살펴보니 장수말벌의 배 부분이었다.

벌이 워낙 크니 머리와 가슴 부위는 잘라서 벌써 집으로 옮겨다 놓았는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끔찍했던 장수말벌 사건이 모두 종료되었다.

 

통증이 없어지니 세상의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

겹벚꽃 꽃눈이 흩날리는 오늘이 너무 아름답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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