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세체다 트레킹은 가벼운 소풍길 같았다.
주변의 암봉들은 위용이 대단하지만 산허릿길은 체력소모가 적은 평지와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체력이 약한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큼 부담없는 길이었다.
드넓은 초원을 보면서 한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이 좋은 목초지에 소나 양 등의 동물이 왜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걸까?
스위스 알프스의 목초지에서는 소가 많아서 워낭소리도 요란하고
쇠똥 때문에 걷기가 불편할 정도였는데
이태리 알프스 돌로미테에서는 아직 동물을 한마리도 못 보았다.
줄지어 걷고 있는 우리 일행들의 정겨운 모습
얼마쯤 갔을까?
맨 앞장서서 걷던 현지가이드가 갈림길에 멈춰서더니
원래의 일정을 변경해서 더 멋진 길을 안내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이유는 우리 일행 모두가 너무나 잘 걷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현지 가이드가 이렇게 맘에 들 수가!
우리 일행은 모두 대찬성하며 산장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을 마다하고
현지가이드가 이끄는대로 천국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었다.
이런 길은 멀리멀리 돌고 돌아서 많은 것을 보고 즐기며 천천히 내려가야지
편한 지름길로 곧바로 내려가면 아쉬움이 크게 남을 터였다.
한참 걷다보니 판자로 길을 막아놓은 곳이 있었다.
동물들이 멀리 가지 못하도록 설치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귀엽게 생긴 당나귀 한마리가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당나귀는 친구도 없이 홀로 다니다가 누군가가 그리웠는지 포근히 안겼다.
이 또한 추억이 되어 그리운 장면으로 오랫동안 남으리라.
당나귀에게는 우리의 잔상이 얼마동안이나 남아 있으려나?
꽃을 따라 걷는 길은 가도가도 지루하기는 커녕 그저 좋기만 했다.
이 길이 계속해서 더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걸었다.
를
이쪽 바위와 저쪽 바위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듯한 애틋한 정경?
야생화와 싸소형제(싸소롱고,싸소피아토를 내맘대로 개명해서 부르기로 했다)가 어울린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점점 더 트레킹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여기도 저기도 야생화가 지천이다.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많은 꽃을 본 날일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꽃길로 우리를 이끈 현지 가이드가 너무나 고마웠다.
세체다 트레킹 구간은 시야가 넓게 트인 곳이 많아서 싸소형제는 계속 우리를 따라다녔다.
우리도 싸소형제처럼 다정하게~~ㅎㅎ
회색 침봉을 배경으로 우리 일행 단체사진
쉬엄쉬엄 쉬면서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이 걷는 널널한 일정이 완전 내 스타일이다.
알프스의 곳곳을 직접 발로 누비고 다니며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으니
수박 겉핥기, 주마간산 격의 아쉬움 가득한 여행과는 전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어느 곳에서는 알프스의 초원을 자유롭게 뛰노는 말과 조우했다.
말들은 전혀 낯설어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상황을 연출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무런 속박도 받지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놈들이어서 그런지
동물이래도 착한 성품을 지닌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ㅎㅎ
말들은 우리가 떠나자 아쉬운 듯 한동안 뒤따라오며 작별인사까지 했다.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장으로 향했다.
현지 음식이 입에 잘 맞지않아 식사 시간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지만
체력이 방전될까봐 억지로 먹을 수 밖에.....
식후에 산장에서 긴 시간 머물면서 천천히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전망 좋은 산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강한 햇볕 아래에서도 모자를 쓰지 않은채 야외 테이블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인이다.
체질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는 방법이 우리하고는 대조적이다.
우리 일행은 모자에, 얼굴 마스크에, 썬글라스로 괴한처럼 중무장을 한채
무조건 햇빛을 피해 실내로 들어가는데
유럽인들은 전망 좋은 야외에서 자연스럽게 해바라기를 즐긴다.
숲길을 걸어 내려오는 길에 작은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그 얕은 물에 커다란 송어가 헤엄쳐다니고 있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이게 가능한 일일까?
횟감으로 침 흘리는 사람이 없으니 알프스 송어는 참 운이 좋다.
잠시의 쉼이 얼마나 달콤한지~
호텔이 있는 마을 가까이 내려왔는데 길가에 이상한 물건들이 놓여있는게 눈에 띄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로 만든 소소한 주방용품과 장식품들이 놓여있고 돈통도 있다.
무인 판매대라고 했다.
어느 집 처마 끝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이것의 정체는?
오늘은 트레킹 첫날이어서 워밍업 수준의 난이도가 낮은 일정을 소화했다.
일정표에는 총거리 약 8Km에 3~4 시간이 걸리는 트레킹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현지 가이드를 따라 먼길로 돌아서 왔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찍힌 거리는 16Km가 넘었다.
어째튼 기묘한 바위산을 바라보며 야생화 꽃길을 걷는 세체다 트레킹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환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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