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알륨꽃 속에서 - 23개월

by 달빛3242 2013. 6. 17.

 

초여름의 문턱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 알륨이 만개했다.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을 기점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알륨이

올해는 예년에 비해  5일 정도 개화시기가 늦어졌다.

작은 꽃밭이지만 우리 가족이 축제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손자를 안고 알륨꽃 만발한 텃밭을 거닐며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잉빈(임중빈)!"

"몇 살이야?"

"떼 (세 살)!"

아직 발음은 완전하지 않지만 이제는 제법 대화가 통한다.

 

 

카메라 앞에서 무표정한 손자에게 무리한 주문을 했다.

 "중빈아, 사진 찍을 때는 웃어야 하는 거야."

"아 하하하하, 아 하하하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어 젖혔다.

설마 웃기까지야 할까 했는데 그야말로 억지로 파안대소를 하는 것이었다.

 

 

"중빈아, 아빠가 사진 또 찍으니까 또 웃어야 돼."

"아 하하하하, 아 하하하하!"

억지로 웃고 또 웃는 손자의 표정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한참을 웃었다.

우리 손자 아직 두 돌도 안되었는데 대단한 연기력이었다.

 

 

오른손에 금붕어 먹이인 건빵 한 개를 꼭 쥐고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대를 잡고 흔들어 보기도 하면서

완전 사색에 잠겨 산책하는 듯한 폼이 제법 의젓해 보인다.

 

 

 

 

엄마와 함께 비눗방울 놀이에 신이 났다.

 

 

마당에도 알륨꽃이 한가득이다.

 

 

"우리 손자 뭘 잡수시나?"

"까까!"

"요놈, 금붕어 까까를 네가 먹으면 어떡해!"

건빵을 금붕어에게 주라고 해도 안 주고 꼭 쥐고 다니더니

나름대로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꽃이 제 아무리 예뻐도 꽃보다 손자다.

 

 

 

어젯밤에는 속리산으로 드라이브를 가려다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보은까지 갔다가 돌아오려는데 어디선가 신나는 음악이 들려왔다.

마침 보은의 색스폰 동호회원들이 넓은 공터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손자 신이나서 마구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았다.

동영상을 찍었어야 하는건데 카메라를 안 가져가서 좋은 기회를 놓쳤다.

 

어린 녀석이 '조용필'의 '바운스'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차 안에서 CD를 들려주면 바로 춤이 나온다.

조용필이 세 살 꼬마까지 아우르는 것을 보면 역시 가왕은 가왕인가 보다. 

 

시골집에서 3박 4일 동안 손자와 함께 너무 너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