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아들네 집에서 휴일을 손자들과 놀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오후가 한참 지난 시간에 밀양의 표충사를 찾았다.
날도 흐리고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썩 내키지 않았지만
이런 날이 분위기가 좋다는 아들의 의견에
부랴부랴 손자들의 간식거리를 챙겨서 길을 나선 것이다.
밖에 나오면 큰손자는 언제나 제 할머니 손을 잡고 작은손자는 내 차지가 된다.
사진만 봐도 귀여운 손자의 고사리 같은 손의 촉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오후 5시 넘어서 도착한 표충사는 늦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웠다.
전체적으로 산세와 절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서
한 눈에 보기에도 참 좋은 위치에 자리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각과 요사채들도 난립하지 않고 가운데 큰 광장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안정적으로 배치가 되어있다.
손자들과 사찰을 둘러보는데도 다른 절에 비해 용이했다.
올 가을은 선운사 단풍 대신 표충사 단풍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마음 아픈 일이 있어서인지 단풍이 더욱 애잔해 보였다.
헛된 바램이지만 부처님께 간절히 소원 하나 빌었다.
표충사에 가면 표충비가 있는 줄 알았다.
기대를 가지고 둘러봐도 없어서 물어보니 10여리 떨어진 곳에 있다해서 볼 수 없어 참 안타까웠다.
손자들이 법당 앞에서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할머니가 부처님께 인사하라고 하니 두 녀석이 인사를 한다.
"부처님, 안녕하세요?"
너무 늦게 도착해서 절에서 머문 시간이 채 1 시간도 안되었지만
손자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표충사는 나중에 다시 와서 꼼꼼하게 둘러봐야겠다.
어둠이 내리는 절을 뒤로 하고 차를 타려는데 작은손자가 고집을 부렸다.
차가 좀 높기 때문에 작은손자를 번쩍 안아서 의자에 앉혔더니
"준이 혼자! 혼자!" 하면서 막무가내로 차에서 도루 내리려 해서 할 수 없이 내려주었다.
이번에는 작은 손자가 혼자 차에 오르는데 며늘아기가 조금 도움을 주었다.
그랬더니 또 차에서 내리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쓰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또 내려줘야했다.
작은손자가 세번째로 차에 오를 때는 어른들 모두가 지켜보기만 했다.
25개월 작은손자는 혼자서 천천히 차에 올라 의기양양 자리에 앉았다.
자동차에 오르는 것 쯤이야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른들이 자꾸 방해를 하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작은손자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할려고 해서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