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런 날들이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감기가 이토록 끈질기게 안 떨어질 줄이야!
감기를 앓은 적이 언제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몇 년째 감기를 모르고 살았었다.
그러니 자연 독감예방주사도 무시해 버렸다.
감기는 약 먹으면 7일, 안 먹으면 일주일이라는 말에 예전에는 감기에 걸려도 약을 안먹고 버텼었다.
며칠 콜록거리다 보면 저절로 나았기 때문에 감기를 우습게만 알았었다.
그런데 수 년 만에 찾아온 이번 감기는 어찌나 지독한지
기침도 심하고 가슴도 답답하고 목소리도 완전히 쉬고 예전과는 증세가 판이하게 다르다.
밤에 잠도 설칠 정도로 기침이 너무 심해서 할 수 없이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다 먹었다.
며칠 동안 약을 먹어도 전혀 차도가 없어서 이번에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진찰을 받고 조제약을 사서 일주일 이상이나 먹었지만 감기는 꿈쩍도 안하고 더 심해질 뿐이었다.
이 시점에서 부터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감기가 아니고 더 큰 병일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큰 병원의 호흡기내과를 찾았다.
의사선생님이 청진기를 이리저리 대보고 여러가지 진찰을 마치더니 '기관지확장증'이 의심된다면서
일 주일 후에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혈액검사, 폐기능검사, CT촬영을 예약해 놓는다면서
지금 먹고있는 감기약을 중단하고 새로운 처방전의 약을 먹으랬다.
CT촬영까지? 더럭 겁이 났다.
인터넷으로 기관지확장증, 폐암 등에 대해서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나의 감기 증상이 폐암증상과도 거의 흡사한 것이 아닌가!
'아, 이제 내가 죽을 병에 걸렸구나!'
감기라면 벌써 나았어야 되는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으니 자꾸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이 모아졌다.
별아별 상상과 걱정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예약된 검사를 받기 위해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먼저 채혈을 하고 이어서 난생 처음으로 CT촬영이라는 걸 했다.
CT촬영은 고통스럽지도 않고 금방 끝났는데 폐기능검사가 문제였다.
호스를 입에 물고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고 하기를 여러 번에 걸쳐서 하는데
기침과 가래 때문에 무척 힘이 들고 고통스러웠다.
가루약을 들이마시는 검사가 가장 힘들었는데 기침 때문에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겨우 폐기능검사를 끝낼 수 있었다.
30여 분 동안의 폐기능검사는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겨우겨우 모든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피가 마른다고 해야할까?
남편과 같이 병원 복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견디기 어려윘다.
"나 폐암이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감기이거나 최악일 경우 기관지확장증일거야."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예약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선생님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 불안은 최고조에 이르러 머리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맨먼저 의사선생님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혈액검사 결과를 쭉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빨강색 글씨가 하나도 없는 걸 보니 나쁜 병은 아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불안이 일시에 해소되고 긴장이 풀렸다.
컴퓨터 화면이 바뀌면서 폐기능검사 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프가 떴다.
"운동하시네요."
의사선생님은 그래프를 쭉 훑어보더니 단정적으로 말했다.
"네? 운동 안하는데요."
"그런데 그래프를 보면 정상 수치보다 월등히 높은데요.
보통이 100인데 134나 나왔으면 운동선수와 거의 맞먹는 수치거든요."
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프를 보니 100 위치에 줄이 길게 그어져 있고
나의 폐기능검사 수치는 모두 130대 쯤에서 잔잔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가래와 기침 때문에 폐기능검사 결과가 굉장히 안 좋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에 놀랍고도 기뻤다.
친구들과 해발 4,300m 고산 여행을 할 때도 나 혼자만 유일하게 고산병약도 먹지 않고 산소통도 사지 않았었는데
단소, 하모니커, 오카리나 등의 악기가 폐기능을 좋게 해주는 것일까?
혈액검사결과, 폐기능검사결과에 이어 CT촬영결과를 알아 볼 때는
수많은 폐 사진이 컴퓨터 화면을 획획 지나갔다.
뭔가 작은 기포처럼 보이는 게 조금 있었는데 어렸을 적 홍역을 심하게 앓아서 생긴 흉터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폐는 아무 이상 없으니 감기 치료나 잘 하라고 했다.
그동안 감기를 심하게 앓으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쫄았던가!
아직도 감기는 낫지 않았지만 큰 병이 아니라니 마음은 편해졌다.
앞으로는 가벼운 감기도, 독감예방주사도 소홀히 하지말아야겠다.
그나저나 감기 때문에 한 달 넘도록 귀여운 손자들을 볼 수 없어서 너무나 보고싶다.